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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어 산, 그 시작과 끝

Interviewee : 박천
Interviewer : 정연진, 정진권
Editor : 정진권

< Hyper Impressionism >의 기획의도에 맞춰 참여 예술가들은 비슬산, 앞산, 팔공산 등 총 3회의 산행 중 최소 2회의 산행을 함께 종주하기로 하였다. 평소에 운동과 등산을 즐겨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프로젝트를 만든 기획자처럼 산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고, 내향적인 성격을 지닌 예술가도 있었기에 처음에는 서먹서먹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참여자들은 함께 고통을 나누며 금세 서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고통의 첫 번째의 산행은 5월 12일, 오후 2시에 오른 비슬산이었다. 비슬산은 대구에서는 남(南)비슬이라고도 부르며 산세에 따라 여자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비슬산은 무려 국내 명산 100위 안에 드는 산으로 대구를 대표하는 산 중에 하나이다. "비슬"이라는 이름은 산 정상의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한편으로는 '신증동국열지승람'과 '달성군지'에는 비슬산을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으로 ‘포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슬산은 진달래 명산으로도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진달래 군락을 보기 위해 봄에 주로 찾는다. 이 시기가 지나도 각각의 계절을 드러내는 경치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처럼 아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에 비교적 쉬운 코스라고 백지훈 작가가 함께 가야 할 산 길을 소개하였다. 백지훈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산행 코스를 제안하고 산행에 있어서 각종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프로젝트 참여자 모두는 백지훈 작가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비슬산 들머리로 모였다. 하지만 이게 웬걸? ‘비교적’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너무 가볍게 산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오르는 길 대부분이 계단식이라 너무너무 지루하고 힘들었다. 종종 산을 오른다는 몇몇의 작가들도 힘에 부친 듯했다. 기획자는 앞서가는 일행을 따라가느라 경치는 볼 새도 없었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육중한 몸뚱어리를 버텨야 하는 얇은 다리는 결국 일행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지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멈춰 앉아서 예술가들이 정상을 찍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프로젝트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기획자를 살뜰히 챙겨(ㅋㅋㅋ) 그가 결국 정상에 함께 오르는 기염을 보여주었다. 끝내 비슬산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정상에 올라 풍경을 내려볼 수 있었다. 프로젝트 기획자는 날씨까지 좋아 시원하게 트인 풍경을 보며 ‘아… 이 짓을 두 번이나 더 해야 하네…’라는 걱정을 했었다고 한다. 비슬산에서의 하산과 동시에 찾은 족발만이 하루의 고생을 보상해주었다.

5월 26일, 비슬산 이후 배긴 온 몸의 근육통이 사라질 무렵, 두 번째 산행을 위해 고산골 공룡공원에 모였다. 목적지는 대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간다는 앞산이었다. 앞산이라는 이름은 사실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성불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시기에 '전산(前山)'으로 바뀌었고 이것이 행정 개편으로 인해 평범하고 일반적인 이름인 ‘앞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후 이름이 굳어져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지만, 앞산 정상 근처에 '성불정'이라는 정자를 설치하여, 원래 '성불산'이라고 불렸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앞산은 도심 한가운데 있는 만큼 등산로와 산책로가 아주 잘 조성되어 있어 대구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성이 잘 되어 있다고 등산하기에 쉬운 산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산은 케이블카가 존재할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을 해본다. 우리의 코스는 고산골을 시작으로 안지랑으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즉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가 아니기에 산행 중에 힘들다고 멈추고 기다리더라도 일행과 다시 만날 수 없는 코스인 것이다. 이제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인지 이전 산행이 훈련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비슬산보다 오르기 좋았다. 기획자는 지난번과는 180도까지는 아니지만 120도 정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였다. 잠시지만 일행의 선두에 위치하기도 하며 앞산 정상까지 무리 없이 올라갔다. 지난 비슬산에서 성장한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아 이제 한 번 남았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산 후 프로젝트 팀원들은 안지랑골에 있는 돼지찌개와 석쇠불고기를 먹었다. 참 맛있었다♥

무리 없이 오른 것 같았지만, 역시나 앞산도 전신의 근육통을 동반하였다. 그것이 사라질 무렵인 6월 9일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는 가장 난코스인 팔공산이었다. 대구에서는 북(北)팔공이라고도 부르며 산세에 따라 남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대구를 대표하는 산이 어떤 산이냐고 대구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번째로 팔공산이라고 대답하는 산이다. 현재는 팔공산으로 불리지만, 시대에 따라 이름이 바뀌었는데, 신라시대때에는 부악(父岳), 중악(中岳), 또는 공산(公山)이라고 불렸다. 고려시대에는 주로 공산(公山)이라고 불렀고, 팔공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팔공산이라고 불리는데 많은 유래들이 있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유래는 '팔군설' 또는 '팔읍설'이다. 팔공산이 여덟 개의 고을에 걸쳐서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여러 지역에 걸쳐 있는 팔공산은 자동차를 타고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너무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코스는 팔공산의 랜드마크인 ‘갓바위’를 향하지 않고, ‘동봉’을 향했다. 백지훈, 신준민, 이재호 작가가 선발대로 산행 며칠 전 먼저 팔공산을 올랐고, 팀원들의 수준에 맞는 코스를 선정하였다. 하지만 기획자는 자신의 수준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코스의 난이도는 절벽 끝에 안전 펜스를 잡고 조심히 올라야 하는 부분들도 있을 정도였는데, 이것은 초심자 코스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모두 정상까지 함께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 Hyper Impressionism >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하였으므로, 앞으로는 개별적으로 진행하게 될 것이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는 매체와 장르 그리고 지역이라는 벽을 허물 수 있게 되었고 < Hyper Impressionism >이라는 프로젝트는 팔공산 정상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2023.05.12 비슬산
2023.05.26 앞산
2023.06.09 팔공산
영상앨범 산